▲  정영면 지회장 (사진제공=이은혜 기자   ©
 인천지회를 이끌고 있는 정영면 지회장은 인천시 주안동 신기시장 내에 위치한 신기시장할인마트를 운영하고 있는 마트인이다. 특이한 점은 온 집안이 마트 가족이라는 점이다. 정영면 지회장의 동생 8남매 중 7남매가 마트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두 아들 역시 마트를 경영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 집안이 14개의 마트를 운영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그렇게 된 데는 정영면 지회장의 공이 컸다. 어떤 내막이 숨어 있을까? / 편집자 주

-15년 전에 시작된 길

서울 대방동에서 떡집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같은 건물 지하에 있던 마트가 망하면서 1년 동안 비어 있었다. 정 영면 지회장은 “그 마트를 동생이 하도록 하면서 7남매 가 마트인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시작은 조촐했다. 2004년 서울 대방동 에서 20평 규모의 미니마트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행보는 서울 봉천동에서 30평 규모를 분양받 아 마트를 하면서 한때 위기를 겪기도 했다. 새벽시장 도 다니고 밤 1시까지 영업도 하면서 왼손에 마비가 올 정도로 일이 고되어서였다. 아들이 돕긴 했지만 평수가 작아 수익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인건비 건지기 도 빠듯했다.

정영면 회장은 “결국 그 마트는 임대를 주고 평수를 넓혀 온 곳이 지금의 인천 신기시장할인마트였다.”며 “이 자리에서 11년째 하면서 지역민들의 신뢰도 얻고 있다.”고 말한다. 3개월도 못 버틸 줄 알았던 마트. 2008년 인천으로 평수를 넓혀 오면서 아들 둘과 함께 본격적인 마트일을 시작하게 됐다는  정영면 회장! 하지만 시작부터 안 좋은 소문이 나돌았다. 3개월이면 망해서 나간다는 말이 무성했던 것이다. 상권이 죽 어서 망한 마트를 살려낼 재간이 있으리라고는 다들 믿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마트 초입에 비슷한 규모 의 마트가 성황리에 영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마트를 지나 시장 안쪽 깊숙한 곳에 위치한 마트를 찾을 사람은 별로 없어보였다.

더군다나 마트 특성상 치명적인 결점도 안고 있었 다. 정육 코너가 없는 마트였다. 수산물 코너도 빈약했 다. 오로지 청과야채와 생활용품으로 승부를 봐야 하 는 마트였다.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정영면 지회장은 낙담부 터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 둘과 분업체계부터 확립 했다. 큰 아들은 매장 관리를 하고, 둘째 아들은 새벽 시장으로 보내 물건 보는 안목부터 키우게 했다.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는 총괄 업무는 그의 몫이었다. 

아침 8시면 직원보다 먼저 출근해 마트 문을 열었던 그다. 밤 11시 문을 닫을 때까지 배달도 하고 카운터에 서 계산도 하면서 전천후로 일했던 그다. 몸에 밴 부지 런함은 따를 사람이 없었다. 정영면 지회장은 “이렇게 하면서 3개월을 넘기고, 6개월을 넘기면서 돌아섰던 고객들의 발길도 다시금 되 돌릴 수 있었다.”고 말한다.

▲ 정영면 지회장이 직원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이은혜 기자)     ©

-확장으로 같이 또 따로

자타 공인 마트 가족이라는 사실은 알게 모르게 마트 운영에도 큰 힘이 됐다는 게 정영면 지회장의 말이다. 정보 교환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 간 공동물류까지 이 래저래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냈다. 마트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두 아들을 차례차례 독립시킨 것도 그래서였다. 정영면 지회장은 “두 아들 이 각자의 마트를 운영하게 하면서 물류는 같이, 장사 는 따로 하는 방법을 썼는데 모두에게 윈윈 전략이 됐 다.”고 말한다.

지금은 상황도 역전돼 두 아들이 그보다 훨씬 더 크 게 마트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너무도 감사하다는 정영면 지회장! 열심히 일한 만큼 정직한 대가가 따라오는 직종이어 서 마트인으로 살아온 지난 삶에 후회는 없다고 말하 는 그는 앞으로 마트인들의 위상 제고에 남은 열정을 쏟아 붓고 싶다고 말한다. (기사협조=아까우시와규 에이스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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